환상의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
현수막, 지금 약간 기울지 않았어요?
에이, 잘못 봤겠죠.
운전은 어렵지 않았어, 오히려 페달을 계속 밟고 싶어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게 싫었지.
글쓰기 강습은 어땠어? 재밌는 거라도 발견했어?
글을 고치지 말라고 가르친 적이 있는데, 한 학생이 물었어. 그럼 그 페이지를 그대로 살리는 게 맞냐고, 더 좋은 글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예술인들이 걸리는 병의 초기 단계라서, 안타까웠지.
남일 같지 않아서? 맞아, 대화문이라는 건 실제 대화에서 나오는 거라고 말하려다 참았어. 너가 견디지 못하는 건 표현의 어설픔이 아니라, 존재의 작위성이라는 걸 미리 말해주면, 난 뭐 먹고 살라고? 그래서 뒤로 가기 버튼은 오늘 치워버렸어. 수업이 한 달, 두 달 지나 12주까지는 유지돼야 학생들도 마지막까지 열의를 보이거나, 뭐 기대는 안 하지만 말이야, 종강을 축하한다는 훈훈한 메시지라도 나누지 않겠어?
역시 예술가들이 제일 계산적이라니까. 초연한 태도는 자살하는 사람의 표정에서나 발견할 수 있지, 아무리 쥐어짜낸 표현을 돌리고 또 돌려도 그 연출은 너무나 어색해 견딜 수 없어. 그래서 난 책은 읽지 않아. 비장미를 느끼고 싶다면 그 숨을 거둔 사람의 싸늘한 시체를 뒤지다가 나온 메모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지.
뭐라고 적혀 있었다 그랬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 한 줄이었어. 다시, 열심히 살아볼게요.
누군가에게 남긴 말이었을까? 심상치가 않다.
아니,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면 그게 진정한 비극이겠지.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끝없이 뒤집어야 하는 것이 삶의 향기와 미디어가 말하는 이른바 묘미라고 한다면, 그게 싫증나서 목숨을 끊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새로 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유로 말이지. 시대는 변했고, 우린 더 이상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잖아.
글쎄, 카페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오히려 옛날 어른들은 눈을 더 마주치려고 들지 않나, 고작 말 한 두 마디를 붙이기 위해서 말이야.
그건 살아온 습관이잖아, 인습이란 건 함부로 없앨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지.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건 또 어른들의 목소리니까 난 빠지겠어. 어쨌든 개인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에 옮긴 학생들을 어떻게 원망하겠어? 그게 쉬웠다면 이제야 노트북, 휴대폰이 발명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우린 요구해야 해, 수천 년이 지나도록 대체 뭘 해왔냐면서, 따져 물어야 하지.
사람이 매 순간 순간을 분명히 의식하는 건 아니야, 그저 쾌락에 자신을 맡기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는 거지, 물론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도 존재하고, 이젠 존경 대신 존중을 원하는 때인만큼 변해야 하는 건 모든 대상이 되어버린 거지.
좋아, 이제 내 생각에서 모든 걸 뽑아냈어?
거의 다 됐어, 오, 좋았어.
뭐가 나왔는지는 언제 알 수 있다 그랬지?
수술 날짜 잡히면 그때 알려줄 수 있지, 고생했어.
근데 그 약물 이름이 뭔데?
아스칼립스, 자기를 편하게 해줄 거야.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겠어?
맞네, 그럼 휴게소로 가자.
모순을 끌어안고 무사히 운전할 수 있겠어?
늘 해온 건데, 뭘, 괜찮아. 오른쪽으로 빠지면 금방 휴게소 나와.
뭐라도 사올까? 옥수수 있으면 그걸로 사와줘, 난 화장실 갔다올게.
말 나온 김에 나도 화장실 갔다가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