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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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도전
다시 찾아오지 마세요. 비죽 밖으로 날아온 하얀 봉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아들아... 노인은 쭈글쭈글한 양볼을 툭툭 건드리며 주저앉았다. 왈왈! 아들이 키우는 개 삽실이는 영문도 모른 채 바닥에 벌렁 누워 노인에게 달라붙었다. 삽실이 너밖에 읍따... 원, 정 사장, 더워서 정신이라도 나간겨? 다 큰 개를 뭘 그리 쓰다듬고 있는겨, 어? 땀에 앞머리가 척 달라붙은, 파란 모자를 벗은 노인이 건너편 논에서 다가와 말했다. 참말로, 사장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그러네. 한 번 사장이면 영원히 사장인 거지 뭘... 그럼 자네는... 이장 평생 하면 되겄네. 에잉, 고거슨 경우가 쪼까 다르제. 이장은 그 뭣 땜시... 할 인간들이 없다 그러니께 딱 한 번 한 것이고. 나도 사업 말아먹은지 5년 지났어, 이 사람아..
2023.09.03 -
사망꾼-장례식을 기념하며 남긴 사진-
두터운 도시 열기에 데인 아스팔트를 밟는다. 아그작 아그작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그대로 학교를 떠나 섬의 깊은 물가를 끝내 헤치지 못하고 잠든, 그녀의 유년을, 그래서 이름을 새로 붙인다. 내 호흡이 차분해질수록 거칠었던 물장구 소리, 모으기만 하고 지킬 줄 몰랐던 패악을, 밤이 더딜수록 내 손목은 그 꺾임이 심해진다. 운명의 일탈, 아니 제법 우연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아침의 부름을 받은 할아버지의 장례식, 나의 땀 닦는 손동작이 빨라진다. 솜씨 있게 푸짐한 육개장을 퍼담으며 마주치는, 감춘 표정의 경연이 펼쳐진다. 나는 그의 끝을 일찍 보고 싶지 않았단다. 할머니는 펄럭이는 소매로 부족함 없이 자란 아들의 등을 안아준다. 늦게 도착한 가족들은 절할 곳을 찾아 두리번대고 막내..
2023.08.27 -
의고
맞아요, 비가 내릴 때면 항상 저는 외출 중이에요. 하지만 저는 우산을 사지 않아요. 그렇다고 누군가 우산을 씌워 주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내리는 비가 머리부터 외투의 깃을 따라 목과 등으로 내려올 때까지 그 느낌을 받아들입니다. 애써 세상에서 혼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에요, 이미 혼자지만 비가 내릴 때 유독 두드러지는 것뿐이죠.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다는 거짓말에 지친 건지, 이런 저는 변화할 수 없다고 굳게 믿는 건지 알 수 없는 걸요, 뒤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저를 철벽 방어해 골을 넣을 수조차 없어요, 인생에도 오프사이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반칙 한번 한 적 없는데 정직한 휘슬 소리가 삐익 하고 울린다.
2023.08.26 -
다른 대륙
공격해올 때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어. 카페 구석에 앉은 세진이 말한다. 그건 자기 탓이 아니야. 나는 주먹에 힘을 쥐고 대답한다. 아니, 모든 붕괴는 내 잘못이야. 내가 세계에 참여한 이상 내 책임이니까. 나는 전쟁이 일어나도 무기 하나 쥐어주지 못하니까. 어쩌면 나는 과거의 내 목소리에 파묻혀 미래를 숨죽여왔는지도 모르겠다, 소리도 없이. 세진은 눈꼬리를 내리며 희미한 미소로 답한다. 아니, 자기는 더 이상 가벼운 말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야. 눈을 떴을 때 보이는 모든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는, 살아보자. 그럼 다음에 봐, 안녕. 그녀는 일어서며 가방을 동여맸다. 나는 떠나는 그녀에게 3일 후 도착할 편지를 쓴다. “어느덧 겨울이 온 듯 나뭇가지는 휘청였고, 나는 아직도 동굴 속에서 발버둥 친다. 미안해..
2023.08.24 -
감성 해커의 자전거(2)
당신은 과거에, 내가 쓸모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구요? 당신은 나를 태우고 달려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잠시만요. 당신은, 내가 이곳을 멍하니 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만요. 당신은, 앞으로 내가 하는 모든 말도,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알겠어요, 이제 그만해요.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마음을 떠나보내기 위해, 음악을 듣지 못하는 날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럴 때만 당신은 나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나는 말했어요. 그것을 원망하지 않는 당신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고. 보이지 않는 답, 처음부터 찾아 헤메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당신은, 다른 대답을 했어야 했어요. ...알겠어요, 원하는 게 뭐에요? 나를 봐요..
2023.08.24 -
감성 해커의 자전거 (1)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해커는 모니터에 입을 맞춘다. 안 된다, 안 돼, 손 떼. 강을 건너는 아버지는 스카프를 똑바로 고쳐주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다. 딸은 망설이고 머뭇거리다 나뭇가지를 잡고 아버지와 함께 언 강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던 소년은 오래도록 부녀의 동행을 지켜보았다, 건네지 못한 핫팩을 무미건조해질 때까지 쥔 채로. A man and a woman hold hands and a hacker kisses the monitor. No, no, take your hands off. My father crossing the river fixed the scarf straight and told me not to look back. The daughter hesit..
2023.08.24